2013년 7월 8일 월요일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8) -높을 고(高), 서울 경(京), 정자 정(亭), 머무를 정(停)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8) 
-높을 고(高), 서울 경(京), 정자 정(亭), 머무를 정(停)

- 적이 쳐들어올까 두려워 망대를 높이 세우는 황제보다
산속 정자에 누워서 조용히 찾아오는 가을을 느끼는 평민이고 싶다 - 

높을 고(高)자는 글자 자체가 높은 망대처럼 보입니다. 아군 진지로 근접하는 적군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데 유용한 것이 망대입니다. 처음 갑골문(甲骨文)의 글자는 지붕이 망대와 붙어있었는데 금문(金文)을 거쳐 소전(小篆)체로 오면서 그림에서 지붕이 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등의 설명을 따르면 이 높을 고(高)가 뜻하는 망대는 땅에서부터 위쪽으로 상당히 높게 설치된 전망용 건축물을 뜻합니다. 이 글자의 아랫부분의 모양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설이 존재합니다. 멀 경(冂)자 안에 들어있는 입 구(口)를 에워쌀 위(圍)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에워싼 부분이 오히려 안에 들어있어서 금방 납득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나라 국(國)자와 같은 집단 거주지 정도로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것을 바깥으로 에워싼 멀 경(冂)자에 대하여 설문해자는 "성 밖에 들이 있고, 들 밖에 숲이 있으며, 숲 밖 너머 멀고 외진 곳을 경(冂)이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경(冂)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이런 설명을 종합해보면 높을 고(高)는 벽으로 둘러싸인 성 같은 것을 등지고 높이 세워서 굉장히 먼 곳까지 볼 수 있게 만든 망대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망대의 꼭대기에서 들판 너머 숲 너머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원래 천고마비(天高馬肥: 가을에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라는 말의 유래는 추고마비(秋高馬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시황은 말을 타고 진격해오는 적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터키인 혹은 우리나라 고구려(高句麗)인이라고까지 추정하는 사람도 있는 용맹한 기마병(騎馬兵)들이었는데 그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풀을 뜯어 먹고 자라 가을이면 똥똥하게 살찌는 말을 타고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이를 극히 두려워한 진시황이 장성(長城)을 높이(高) 쌓았다지요. 추고마비(秋高馬肥)! 바로 "가을이 오는 것을 대비하여 높은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 경(京)자와 정자 정(亭)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이 높을 고(高)와 거의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자 정(亭)의 갑골문을 보면 그 모양이 삿갓을 쓴 한글 '푸'자처럼 생겼습니다. 높을 고(高)처럼 네모난 모양도 없고, 서울 경(京)처럼 세 다리도 없으며 오직 영어 'T'자처럼 생긴 외다리만 있을 뿐입니다. 서울 경(京)은 다리가 3개, 정자 정(亭)은 다리가 1개로 차이가 있습니다. 높을 고(高)의 아래 있었던 방어가 필요한 지역이나 나라의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을 지우고 그 자리에 대신 다리 하나(I)를 그려 넣어 적의 침략을 미연에 감지하는 데 사용하는 망대의 뜻이 아닌 다른 의미로 쓴 것이 서울 경(京)자입니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연(敷衍)한 것이 높을 고(高)자라고 볼 때 서울 경(京)자가 높을 고(高)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분은 서울 경(京)이 단순히 큰 집을 의미하며 이 글자가 나중에 큰 집이 많이 모여있는 도시나 서울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언덕 위에 신을 섬기는 사당 같은 것을 지어놓고 그 사당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성(城)이나 도시로 발전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그럴 듯 합니다.

서울 경(京)자와 정자 정(亭)자의 전체자(篆體字)를 비교해보면 서울 경(京)위에 사람 인(人)이 더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 많은 도시에 머무는 여행객을 그려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지체 높은 분들이나 가마 또는 말을 이용했고 평민들은 대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걷다 보면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마을이나 성(城)을 지나게 되고 날이 어두워지면 내일 떠날 것을 기약하며 그곳에서 하룻밤 묵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자 정(亭)자에는 원래 '머물다'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머무를 정(停)자가 따로 생기면서 정자 정(亭)자는 한가롭게 쉬면서 경치를 즐기는 장소인 정자(亭子)의 뜻으로만 쓰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망대나 정자에는 벽이 없으며 1층짜리를 정자, 2층짜리로 규모가 더 큰 것을 누각(樓閣)이라고 합니다. 특히 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높은 사당 같은 집(京)이나 외적의 침입을 미리 보고 방어하기 위해 쌓은 망대(高)와는 달리 정자(亭)는 자연 속에 묻혀있는 자연의 일부라고 할 만큼 인위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물론 중국의 도연정공원(陶然亭公園: 1695년 청나라 강희제 때 건립. 중국 역대의 유명 정자를 재현. 총면적 59만 제곱미터, 수면 면적만 17만 제곱미터. 중국 정자문화의 정화(精華)를 체험할 수 있음. 입장료 2위안(한국 돈 약 380원))에서 느끼는 것처럼 정자(亭子)도 결국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지만 자연과 벗 삼아 지어진 그 느낌은 결코 인공미라고만 할 수 없는, 자연미 그 자체입니다.
정자를 만들 때 벽을 세우지 않아 밀폐시키지 않은 것은 그곳에 머물러 앉아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변 풍경과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게 합니다. 정자 정(亭)자가 본디 '사람이 머문다'는 뜻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사람이라는 것은 본유적으로 자연과 가까운 존재라서 불안한 마음에서 세워진 높은 망대(高)보다는 편안한 마음이 깃드는 정자(亭)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살진 말을 타고 적국의 기마대가 쳐들어올까 봐 망대를 높이 세우는(秋高馬肥) 불안한 황제이기보다는 산 위 정자에 만연한 가을빛(山亭秋色滿)을 느끼며, 조용한 가운데 찾아오는 가을(秋色靜中生)을 즐기는 필부(匹夫)로 남기 원하는 마음, 비단 저 혼자만의 소망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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