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8일 월요일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3) - 허물 죄(罪,辠)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3) - 허물 죄(罪,辠)

"사회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죄인에 대한 합리적인 처벌 여부를 통해 가늠한다."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강사를 초빙하여 한자와 성경의 내용을 연관 지어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사는 여러 가지 한자들을 재미있게 파자(破字)하여 성경의 내용을 함께 설명하는 식으로 많은 청중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는 허물 죄(罪)자에 대하여 머리 부분이 넉 사(四)자이며 네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죄악을 의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머리 부분이 눈 목(目)자 이며, 성경 창세기 3장 6절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처럼 눈이 범죄의 통로라고 하면서 나름 그럴 듯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자의 소전(小篆)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한자의 머리부분은 넉 사(四)자도 아니요, 눈 목(目)자도 아닌 그물 망(网)의 모양과 더 비슷합니다. 그러니 굳이 설명하려면 '도망치던 죄인이 걸린 그물' 운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또한 허물 죄(罪)자의 아랫부분에 아닐 비(非)자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어떤 분은 이것이 나무 목(木), 즉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안에 만들어 놓으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뜻한다고 하면서 죄(罪)란 바로 그 선악과(善恶果)를 둘로 쪼개듯이 망가트려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닐 비(非)자는 본래 새가 나는 모습을 본 떠 만든 날 비(飛)자와 관련이 있는 글자로 아래로 늘어트린 새의 날개가 서로 반대쪽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반대',' 반대쪽', '어긴다'는 등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합해서 보자면 '새의 날개가 그물에 걸렸다.'는 뜻으로 구성해 볼 수 있는데, 놀랍게도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해설은 이 그물이 새를 잡는 그물이 아니고 물고기를 잡는 대나무망(竹網)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자를 연구하는 적지 않은 분들은 통전적으로 이 글자가 '그릇된 일(非)을 행한 사람을 포획한다(捕獲)'는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갑골문을 살펴볼 길 없고 오직 후대의 소전(小篆)체만 떠들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허물 죄(罪)자에 대한 여러가지 그럴 듯한 주장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다른 주장과 이해가 공존하는 한자는 대개 상대적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한자에 각자 나름대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이 글자에 대한 논의를 어느 정도 종결짓기 위해서 훨씬 더 옛날에는 허물 죄(罪)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문헌은 이 글자 대신 똑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글자인 허물 죄(辠)자를 썼습니다. 허물 죄(辠)는 사람의 코 아래에 고대 형벌 도구인 매울 신(辛)자가 놓여 있는 글자입니다. 그것은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의 코를 베는 칼이었습니다. 나중에 '맵다','독하다','괴롭다'등의 의미의 유래도 코가 잘린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진나라 26대 왕인 혜문왕(秦惠文王)은 태자였을 때 법을 어겨 상앙이 스승의 코를 자르는 형벌을 받는 것을 보고 나중에 상앙을 거열(車裂: 흔히 죄수를 난도질해서 죽이는 능지처참(凌遲處斬)과 혼동 되는 형벌로 소나 말을 죄수의 사지에 묶은 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몰아 사람의 신체를 절단하는 형벌)로 처형했습니다. 코를 베는 형벌을 의형(劓形)이라고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처럼 잔인하게 복수를 한 것으로 보아 스승의 코가 잘린 일에 대해 혜문왕이 얼마나 분노했고 수치스럽게 여겼음을 미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한자 역사에 이 두 글자는 같은 의미와 용도로 병용(並用)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글자를 통해 범죄에 대한 고대 중국인의 개념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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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은 죄를 짓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필경 그물에 걸리듯이 붙잡히고 말 것입니다.
죄인은 물고기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대나무 그물에 턱 걸리고 말 것입니다.
붙들리면 신체가 절단되는 것과 같이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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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부정적 사회활동이며 대인적 위해(危害)입니다. 사회의 안녕을 확보하기 위해 리더 집단은 이러한 범죄의 확산을 막으려고 체포망을 더욱 조밀하게 만들고 무서운 형벌을 통해 범죄자의 종국이 참담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지시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계속 범죄와 범죄자와 직면할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죄악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인적인 범죄에 대해서 일정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인 대물 상해나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스스로 '나의 죄는 신이 용서했기 때문에 나는 더는 용서를 빌 대상도 없다.'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가 다른 사람의 고귀한 인성을 자신의 범죄로 모멸했다는 것을 사회가 간과하고 용서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정도가 과하거나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권 등 기본권 등의 차원에서 볼 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면 현대인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 16세에 결혼하여 2년 동안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구타와 학대에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도망쳤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두 귀와 코가 잘린 여성 아이샤가 성형 수술을 통해 새 삶을 되찾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구시대적인 신체 절단의 형벌이 현대에 곧 인권 유린과 직결된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합당하고 공감이 가는 범위 내에서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정당합니다.
그 사회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회라는 전제하에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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