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4) - 옷 의(衣), 벌레 충(蟲, 虫)과 긴 뱀 사(蛇)
"파충류(爬蟲類)인 뱀에게서 배울 점은
성장하기 위해서
외식적이고 사치스러우며 화려한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가장 오랜 자전(字典)이며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허신(許愼, 30 ~ 124)이 저술한 책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옷 의(衣)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비교적 간단한 설명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옷은 몸을 가리는 데 쓰이는 것으로서 윗옷을 의(衣), 아래옷을 상(裳)이라고 한다."
갑골문(甲骨文:기원전 1200년~1050년 상(商)말기 문자)의 해당 글자를 보고 일반적으로 윗부분이 옷의 목깃을 의미하며 아랫부분은 옷을 입은 뒤 가운데로 모아 여미는 옷의 양 섶이라고 해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무리 봐도 왜 목깃을 'V'형으로 그리지 않고 'ㅅ'형으로 그려 놓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전체를 뭉뚱그려 고대의 의복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혹자는 옷 의(衣)자를 벌레 충(蟲,虫)자와 연관 짓습니다. 벌레 충(虫)자는 원래 '뱀을 포함한 땅에 기는 어떤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실제로 지금까지도 긴 뱀 사(蛇)자 왼쪽 부분(左邊旁)에 벌레 충(虫)자가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의 다를 타(它)는 '뱀 사'로도 읽히는데 이 역시 '사람 이외의 어떤 것', '벌레','뱀'의 의미를 가진 글자입니다. 갑골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벌레 충(虫)과 옷 의(衣)가 상당히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첨부 그림 참조) 고대에 벌레와 동류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은 파충류(爬蟲類)인 뱀의 윗부분에서 무엇이 잘려 떨어져 나간 것을 옷 의(衣)자로 형상화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뱀은 껍질을 벗는(脫皮) 변온동물(變溫動物)입니다. 그리고 뱀이 벗어놓은 껍질을 '새끼 용의 옷' - 용자의(龍仔衣)라고 하는데 이것을 중국 의학(中醫)에서는 해독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고대 중국인들이 고대 중국인들이 뱀이 벗어 놓은 허물을 보고 몸에 덮어 수치를 가리는 옷의 의미를 연상하여 옷 의(衣)자를 만들었다고 추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어떤 패션쇼에서 자칫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뱀 가죽에 색깔을 입혀 만든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뱀이 가진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많이 팔릴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과 차별화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할 것 같기도 합니다.
뱀은 성장과 성숙을 위해 껍질을 벗는데 사람은 자신의 수치를 가리고 치장하기 위해서 옷이라는 '껍질'을 많이 끼어 입고 있으니 뱀과 사람 누가 더 솔직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과도한 자기 수식과 치장이 난무하는 요즘, 뱀이 허물을 벗듯이 껍질들을 다소 벗어 버리고 진솔한 자신을 표현하므로 더욱 성숙한 우리가 되는 것은 어떨까요? 뱀이 벗어 놓은 껍질이 해독약으로도 쓰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벗어 놓은 것들이 삶을 정화(淨化)하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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