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8일 월요일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5) - 절구 구(臼), 거듭 신(申), 보일 시(示), 귀신 신(神)

송봉운의 한자 이야기 (5) 
- 절구 구(臼), 거듭 신(申), 보일 시(示), 귀신 신(神)

" 많은 사람은 
뭔가 눈에 보여주고 이익을 안겨주는 
현실적인 신을 추구한다.
고대 중국인처럼!"

진시황(秦始皇) 시대의 소전(小篆)체를 보면 거듭 신(申)자가 절구(臼) 사이에 긴 막대기가 뚫고 지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네모난 상자를 긴 장대로 내리쳐서 부수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절구가 아니라 양쪽 손이며 공손히 중간의 긴 막대기 같은 물건을 세로로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첨부 그림의 세 번째 소전체 참고)

그러나 더욱 오래된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의 거듭 신(申)자를 보면 또 그 모양이 판이합니다. 마치 사람 두 명이 다리를 엮고 누워있는 형상 같기도 하고 어머니 아래로 아기가 나오고 있는 출산의 형상 같기도 합니다. 그 출현 시기를 갑골문과 거의 같거나 조금 나중으로 보는 금문(金文)에서 거듭 신(申)자를 보면 그것은 우리나라 국기에서도 볼 수 있는 태극(太极)의 모양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거듭 신(申)자의 조자(造字) 유래를 둘러싸고 정말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설문해자(说文解字)는 몸과 몸이 얽히고 묶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럼 이것이 남녀의 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인가, 알몸으로 얽혀있는 남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가를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남녀가 아닌, 어머니와 딸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어머니가 딸을 출산하는 모양을 그려 문자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문화에서 거듭 신(申)자는 지지(地支)의 아홉 번 째(The ninth of the twelve Earth Branches) 글자입니다. 중국인들은 우주 만상을 크게 음(—)과 양(+)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목,화,토,금,수의 오행으로 나누어 이해했으며 그 음양오행을 다시 10개의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12개의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나누었습니다. 천간(天干)은 양(+)을, 지지(地支)는 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고대 중국인들은 음과 양의 관계 가운데 우주 만물의 생명과 변화, 사멸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 중국인의 사고의 큰 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거듭 신(申)자는 음력 7월을 뜻하며 음력 7월은 24절기의 15번째로 태양 황경이 165도가 되는 입추(入秋), 즉 백로(白露)가 있는 달입니다. 가을 분위기에 무르익어가며 농작물의 산출(產出)이 기대되는 수확(收穫)의 달입니다. 음(-)으로 음(-)을 낳는, 어머니가 딸을 낳아 무한한 생산을 기약하는 풍성한 달입니다.

갑골문과 금문, 소전체가 전해주는 의미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구성해 보면: "음과 양의 조화 가운데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는 시기가 되면 임산부의 기운, 즉 어머니의 기운인 음기(阴气)가 충만하게 되어 땅은 많은 경작물의 소출을 내게 되며 거둬들인 곡식을 절구에 넣고 찌어 껍질을 벗겨 모아 곧 다가올 겨우내 먹을 양식으로 비축한다."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소출과 출산의 의미가 있는 신(申)자는 고대 중국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놀랍게도 귀신 신(神)자 안에 이 거듭 신(申)자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인은 거듭 신(申)자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는 번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기도 했는데 하늘과 땅, 즉 양과 음의 작용을 소출과 출산의 의미와 연관 지었음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밭(田)을 가로질러 번개(I)가 수직으로 내리꽂는다는 것입니다. 번개는 비를 동반하게 마련이고 비는 농작물이 자라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귀신 신(神)에 대한 해석은 그것이 단순한 잡귀를 의미한다고 말하지 않고, '만물을 생산한 신'이라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볼 때 지금 중국어 성경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바로 이 귀신 신(神)자를 써서 표현하는 것이 옥황상제에서 차용해온 것으로 보이는 상제(上帝)라는 단어에 비해 열등한 오용(誤用)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창조와 생산의 의미를 가진 거듭 신(申)자가 들어 있는 한, 또 설문해자의 귀신 신(神)에 대한 설명이 '생산자(조물주)'라고 명시된 이상, 귀신 신(神)자를 위대한 '창조신'으로 이해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봅니다.

귀신 신(神)자의 왼쪽(左邊旁)에 옷 의(衣)를 쓰기도 하지만, 원래는 보일 시(示)를 쓴 것입니다. 갑골문으로 보는 보일 시(示)는 죽은 자나 조상을 공양할 때 세워두던 높은 판자나 단(壇)의 모양처럼 보입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시(示)자의 머리 부분의 두 횡선은 하늘을, 밑으로 늘어진 세 선은 각각 태양, 달, 별을 의미한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하늘의 신(天神)이 땅으로 내려 와 땅의 신(地神)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즉 하늘 높이 있어 볼 수 없던 신이 땅에 강생(降生)하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可視)적인 무엇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조물주 신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베풀어 주는 축복은 실제 산물로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옛날 중국인은 신(神)을 막연하게 우주 어딘가에 있는 신이 아니라 사람에게 나타나 보이는(示) 소출(申)을 통해 알 수 있는 만물의 생산자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혹자는 고대 원시인이나 의지력이 약한 사람들이나 신을 찾는다고 하지만 고대인들이 우리보다 지능이 낮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실제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일도 적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처럼 우리의 능력 밖의 어떤 일을 바라며 초월적 존재가 실제로 눈에 보이도록 어떤 선물을 안겨주기를 고대하는 마음을 무조건 비판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신앙은 현실적입니다. 중국인에게 그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중국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고등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현실적인 욕구를 초월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매우 많은 사람이 현실적인 요구를 따라 종교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욱 고상한 내용은 그 이후의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뭐 번갯불이라도 번쩍 치고 빈손에 돈다발이라도 툭 떨어져야 믿겠습니까? 아니면 실제로 보이는 것(示)도 없고 생기는 것(申)도 없지만,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그냥 믿겠습니까? 아니면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만, 신에 대한 개념을 이용하여 무엇인가 인생의 해답을 얻는 데 이용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신의 도움과 은총이 없이도 얼마든지 스스로 유에서 무를 창조해낼 수 있습니까? 결국, 결정권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물주 신을 기대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신으로 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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